UX, 경험이 공간을 만든다

Kwangsu Cho   |   News

모든 사람들은 공간을 보고, 듣고, 느낀다.

의자가 안락하다든가, 노랫소리가 듣기 좋다든가, 조명이 부드럽다든가 하는 사소한 경험들을 한다. 이러한 경험은 축적되고, 결국 그 공간에 대한 인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이제 생각해보자. 우리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에게 도서관에서의 경험은 어떤 느낌이었는지 말이다.

UX는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지금 나는 도서관에 가는 길이다. 정보를 찾거나 정리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가장 편리한 공간이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낯설게 들릴지 몰라도 도서관에서 ‘정숙’이란 표어는 사라진 지 오래다. 요즘 도서관은 토론과 소규모 모임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실 공간이 귀한 이 시대에 이곳만큼 ‘창의적인’ 공동작업을 할 수 있는 장소는 없다. 모든 정보 서비스는 공간과 사람을 중심으로 재구조화되어 제공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혹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작업에 맞춰진 정보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도서관은 더 이상 정보를 열람하는 검색 센터 기능을 중심으로 운영하지 않겠다.”

모든 변화는 어느 날 도서관계가 이런 선언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퀀텀점프물리학 용어로,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뛰어오름을 의미라고 부를 만큼 큰 사건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고 당연시해왔던 ‘조용한’ 도서관, ‘차분한’ 열람실을 도서관 서비스의 핵심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주장이 도서관으로부터 나왔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획기적이었고 또 중요했다. 그래서 한때 스타벅스가 그랬듯이 쾌적한 다목적 공간에서 진지한 생산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를 갖추어 두고 이를 사람들이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도서관이 더 앞장서서 도입하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 도서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람을 모든 서비스의 중심”에 두는 일이었다. 도서관은 결국 사람, 이용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기본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동안 도서관이 변화한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반영하지 못했다고 비판받았던 부분을 성공적으로 보완하여 2080년 현재, 모든 사람이 가고 싶은 곳이 바로 도서관이 되었다. 이전 한 경영자가 그랬듯이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asic)’를 외친 셈이고 ‘바닥부터 새로 시작’한 성공 사례이자 창의력의 생산기지로서 전 세계는 도서관을 재평가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시점에 도서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UX’ 즉 사용자 경험이란 단어 한 마디였고 그것은 나와 당신을 도서관의 진정한 주인으로 맞이하겠다는 각오였다. 그 실험은 큰 성공으로 보인다.

운영 주체, 사용자의 경험을 결정하다

User eXperienceUX는 사용자 경험을 의미한다. UX와 종종 함께 등장하는 User InterfaceUI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말한다. 이렇게 글로 적으니 쉽게 와닿지 않는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두 단어가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지 않던가.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UX lab의 조광수 교수에게 UX와 UI를 조금 더 쉽게 구분하는 방법에 관해 물었다.

“영화관을 예로 들어볼까요? UI는 영화관과 사람을 이어주는 통로입니다. 사람들이 영화관에 잘 들어갈 수 있도록, 또 그곳에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UX는 그 영화관에서 여러분이 영화를 보고, 느끼고, 즐기는 것입니다. 바로 ‘경험’이죠. UX는 사용자의 경험이고, UI는 그것을 기술과 연결해주는 매개체입니다.”

이때 경험의 주체는 사용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영화관의 운영자들은 사용자들이 ‘좋은 경험’을 하도록 많은 노 력을 하고 있고, 그 결과로 우리는 ‘아, 영화관은 좋은 곳이구나.’ 라는 직관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이처럼 영화관과 같은 운영 주체가 사용자가 어떤 경험을 해야 할지 사용자 연구를 통해 기획이 되면, 이를 경험할 수 있는 행위와 활동으로 설계하는 것을 UX 설계라고 한다. 마치 영화를 만드는 감독처럼, 여러 가지 장치들을 지휘해서 경험의 틀을 짜는 것이다. 그래서 UX 설계는 하나의 기술이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과학적, 인문학적 이해를 기반으로 설계하고 공학과 디자인을 통해 구현하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UX의 기본 뿌리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시작한 인공지능과 인지과학에 있습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인지, 생각, 판단 등을 인공적으로 만들기 위한 분야에서 출발했어요. 이는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렇게 존재하지 않던 분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국 우리가 체험을 통해 정보를 축적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체험이 경험으로 축적되는 과정을 제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UX의 출발점이자 기본 정신이지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UX에 대해 한정적인, 또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특히 ‘UX’하면 산업디자인 분야만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디자인 분야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인간의 마음에 대해 과학적 접근을 시도한 것으로부터 시작된 UX가 1990년대에 디자인 분야와 결합하면서 급속하게 발달하게 돼요. UX 기술에 디자인이 접목되면서 심미적으로도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마치 UX 디자인이 시각적 예술과 같은 말인 것처럼 혼용되는 거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UX의 전통적 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더 오해를 사고는 합니다.”

청각과 시각, 촉각 등 모든 감각과 지각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하나의 경험을 축적한다. UX가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이유다. 하지만 UX의 목표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Library’가 아닌 ‘Liverary’로의 변화

    자, UX에 대한 개념이 자리 잡았다면, 이제 도서관을 이야기해보자. 사실 도서관은 아직 이용자 중심의 UX 설계와는 거리가 멀다.

“도서관은 이용자가 아닌 도서관의 목적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설계되어 있어요. 도서관에 들어서면 입구부터 차단기가 있는 곳이 대부분이에요. 굉장히 폐쇄적이죠.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정숙이고, 서가의 배치는 상당히 책 중심으로 되어 있어요.”

지금 도서관에 필요한 것은 이용자를 지향하는(User Oriented) 것이 아니라, 이용자를 중심에 두는(User Centered)것이다. 전자가 관리자의 입장에 있다면, 후자는 이용자의 입장에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고급 정보를 얻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면, 요즘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도서관에 갑니다. 대학생들이 읽은 책을 바탕으로 논문을 쓰는 것처럼요. 하지만 요즘의 대학생들은 도서관이 아니라 대형 서점을 갑니다. 친구와 차 한잔 하면서 또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을 볼 수 있고, 심지어 그 책을 나눌 수도 있죠.”

정숙의 도서관보다 소란스러움이 함께하는 서점을 찾는 이용자들. 도서관은 이제 ‘정보를 제공하는 공간’을 넘어 ‘정보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의 삶이 도서관에 담겨 있어야 한다.

“사용자를 지향한다는 것은 사용자를 바라본다는 겁니다. ‘너희 지금 어딜 가고 있니?’하고 관심을 가지는 거죠. 비슷한 말로 사용자 친화적User-Friendly이라는 말도 있죠. 그건 ‘나랑 친하게 지낼래?’하고 묻는 거예요. 제공자의 입장에서요. 반면 사용자를 중심에 둔다는 것은 시설, 서비스 등 모든 상황의 출발점이 사용자로부터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사용자의 입장이라면?’을 생각하는 겁니다. 결국 도서관이 가야 할 방향은 Library가 아니라 Liverary인 거지요.”

‘Library’가 아닌 ‘Liverary’란 Live 영어로 ‘살다’를 의미가 모여있는 곳. 즉, 삶을 담아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대해서 조광수 교수는 요즘 사람들이 자주 찾는 카페를 예로 들었다.

“좋은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의 ‘공간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에 따라 공간을 쉽게 구분해보자면, 제1의 공간은 일하는 곳, 제2의 공간은 가정, 제3의 공간은 카페입니다. 제1의 공간은 사무실 또는 패스트푸드점처럼 딱딱한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빨리 일해.’, ‘얼른 먹고 가.’와 같은 의미를 담은 거예요. 제2의 공간은 가정입니다. 안락하죠. 소파도 있고, 바닥에 누울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두 공간은 일과 가정으로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두 공간의 장점을 모아 놓은 곳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바로 제3의 공간이지요.”

카페는 이미 사람들의 삶에 제3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집중해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으면서도 편안하고 안락한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카페를 찾는다. 도서관은 그 이상, 제4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도서관은 딱딱한 의자와 책장이 가득 채워진 업무 공간, 사무실에 더 가깝다.

사용자가 기대하는 UX를 이해하라

  결국 UX는 도서관 서비스가 철저하게 사용자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는 도서관의 운영 철학을 바탕으로 그 위에 구체적인 설계가 세워져야 하는, 어렵고 광범위한 작업이다.

빙빙 돌아왔지만, 결국 UX 설계의 첫 단추는 사용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다. 도서관의 많은 영역 중 하나를 UX 설계한다고 가정해보자. 앞서 말했던 차단기가 달린 개폐식 출입구다.

“개폐식 출입구는 도난을 막는 중요한 방편입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이 영역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개의 고민을 함께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예를 들어 에어월Air Wall이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스타트업에서 개발한 기술인데, 사람들이 어떤 ‘공간’에 들어서면 모든 것이 허용됩니다. 자료에 접근할 수도 있고, 서로 나눌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 ‘공간’을 벗어나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자료에 접근할 수도, 나눌 수도 없어요. GPS(전 지구 위치 파악 시스템)를 활용해 범위를 기반으로 가상 울타리를 설정하는 지오펜싱(GeoFencing)의 개념이지요. 그럼 이용자들은 갑갑한 출입구 없이 편하게 오갈 수 있으니 좋고, 도서관은 차단기 없이도 도난 등을 예방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요?”

UX 측면에서 보자면 도서관 서비스는 모든 분야에서 뒤처져 있다. 청구기호나 ISBN은 사용자가 아닌 책을 위한 분류 체계이고, 아직도 도서관 내 컴퓨터에서는 책의 내용으로 데이터가 검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요즘과 같이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을 어떻게 생각하지?’, ‘이 책을 선택한 사람들은 또 어떤 책을 선택했지?’와 같은 궁금증은 도서관에서 풀기 힘들다.

이처럼 도서관 운영자들이 기대하는 UX와 이용자가 현실에서 기대하는 UX는 서로 다르다. 이 격차를 줄이는 작업이 바로 UX의 기술이다.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도서관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 말이다.

“첫 번째, 사용자의 입장에서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이해해야 합니다. 도서관 관계자 대부분이 이용자 중심의 입장에서 도서관의 문제를 정의해보지 않으셨을 거예요. 굉장히 세밀하게 정의해야 합니다. 모든 기능을 다시 살펴봐야 해요. 도서관을 처음부터 다시 세운다는 가정 하에 요즘 사람들에게 공간과 정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두 번째, 우리나라 현실에서 ‘진짜 삶’이라는 것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Library가 아니라 Liverary가 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이란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통해 도서관을 재정의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입장에서 질문하고, 사용자의 입장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하나씩 보일 겁니다.”

도서관은 이 시대에 가장 훌륭하고 소중하며, 중요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UX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쉼과 창조가 함께하는, 양질의 정보가 제공되는 공간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것이 도서관의 미래다.

이 글은 국립중앙도서관 웹진 7월호 pp.46-49에 실린 조광수 교수님의 인터뷰 기사이며, 이미지는 해당 본문에서 가져왔습니다.

원문보기)

http://www.nl.go.kr/upload/nl/publish/2016/0708/2016070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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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ngsu Cho

Cognitive Engineering Square @ UX Lab